이제 협업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도 몰랐고, 2년을 넘게 끌면서 쌓여온 회의가 머리를 짓누른다. 이제 와서 성에 안 차는 부분도 많이 생겼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무슨 케빈 쉴즈나 브라이언 윌슨도 아니고 이 단계에서 엎어버릴 배짱도 없다. 남은 시간도 많지 않고, 이젠 그냥 음악이 싫다. 이 얘기도 벌써 몇 년째다.
그래도 군 전역 후, 지금까지 참 편하게 살았던 것 같다. 어디 가서 음악한다고 광고하는 성격도 아니지만 누가 물어보면 숨기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기껏 물어봐 놓고 할 말이 없으면 으레 창작의 고통 운운하며 나를 치켜세우려 든다. 창작의 고통은 무슨… 낮 최고 온도가 35도일 때 작업실에만 앉아 있는 백수한테 고통이라니 너무 명예로운 수식어다. 잠깐 O팡 물류 센터에서 일했을 때가 가장 큰 고통이었다. 거기서 만난 아재는 근성만 있으면 여기서 목돈 챙겨 나간다고 했다. 물론 난 일주일 만에 때려치워서 알거지다.
진짜로 음악을 관두려고 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쿤디 씨와의 협업이 결정되기 전엔 진짜로 음악을 관두고 싶어서 장비 일체를 처분하려고 했다. 몇 안 되는 친구들한테도 다 얘기했고. 근데 지금까지 퍼부은 시간이 너무 아까운 거다. 매몰비용을 이해할 정도로 똑똑했다면 애초에 음악을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O팡도 시발 너무 가기 싫었다. 평생 살면서 만났던 좆같은 얼굴들도 하나하나 떠올랐다. 물론 그들 대부분에겐 내가 좆같은 놈이었겠지만, 복수는 좋은 동기가 된다. 아무튼 쿤디 씨한테 처음 보냈던 메일의 답장이 왔고, 같이 정규 앨범 단위로 작업하게 되었다. 그게 벌써 2019년 초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보냈는데 다 씹혔다. 개새끼들. 복수하겠다.
취직 활동이 유보되고,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친구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음악 계속할 거라고 지질하게 번복하는 1안. 그냥 조용히 있다가 앨범 발매 날에 딱! 지금까지의 역경을 음악으로 말하는 2안. 나는 당연히 후자를 택했다. 그러다가 작업 스케줄이 계속 밀리면서 더 이상 둘러댈 거짓말이 떨어지자, 모두에게 사실대로 털어놨다. 심지어 그때 다 얘기한 줄 알았는데 못 들은 사람도 있어서 걔는 아직도 내가 음악을 관둔 줄 안다. 미안하다.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
글머리에 적었듯 이제 앨범은 마무리 단계다. 이 타이밍에 왜 갑자기 블로그냐고? 일단 귀가 아파서 잠깐 쉬고 싶은 게 첫째고, 슬슬 나라는 사람의 발자취를 남겨두고 싶었다. 여전히 흔적을 남기는 일이 불편하지만, 그래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 자주 옛날 작업물을 삭제하고, SNS에 올린 글은 지우다 못해 그냥 계정을 날려버리곤 했다. 창피했다. 사람들이 이런 되다 만 곡(또는 글)으로 나를 판단하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되다 만 곡도 결국 그 음악가의 일부고, 청자의 입장에선 이미 완성된 경험인데 내가 그것을 빼앗아 편집하려 들었던 것이다. 어차피 다 된 곡은 내가 뒤져도 못 쓸 게 뻔하니 적당히 타협하기로 했다. 이 글, 이 블로그는 그 타협을 위한 연습이다. 내 안에서 가장 되다 만 글을 배설하고, 냄새나는 그것을 담벼락에 걸어두다 보면 언젠가 다른 악취에도 무덤덤해질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
그리고 어쩌면, 글을 읽은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더 스트리밍을 돌려주지 않을까?
나는 정말로 물류 센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