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급한 불은 껐으니 귀도 쉬어줄 겸 밀린 영화를 감상했다. 20대 초반까지는 하루에 두세 편도 봤었는데 언젠가부터 영화 감상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 됐다. 막상 보기 시작하면 끝까지 보는데 시작 버튼을 누르기가 망설여진다. 좀 웃기는 게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정주행도 심심찮게 하는 편이다.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 도 7시즌짜리를 반년 안에 다 봤고, 커뮤니티 나 릭 앤 모티 같은 건 벌써 네 번씩은 돌려본 것 같다. 한 번 꽂히면 대여섯 시간은 우스운데 영화는 그렇게 못 보겠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7월 말에 넷플릭스로 미드소마 를 봤다. 개봉 당시에 인터넷에서 이름은 들어봤지만, 원래 공포물을 별로 안 좋아해서 볼 생각 없었던 영화다. 기본적으로 겁이 많고, 특히 어두운 곳에서 소위 갑툭튀하는 장면에 약하다. 그런데 미드소마는 포스터부터 밝고 화사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부모님과 같이 볼 영화는 아닌 것 같아서 두 분이 주무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최대한 낮은 음량으로 틀었다. 아니나 다를까 개신교 집안의 거실 TV로 보기엔 참으로 부적절한 영화였다. 영화는 재밌었다. 몇몇 장면은 가끔 꿈속에 나올지도… 살면서 스웨덴 사람을 만나게 되면 괜히 경계할 것만 같다.
전염병 창궐 이후론 영화관에 가지 않았는데, 수요일엔 거의 2년 만에 CGV를 다녀왔다.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켰다기보단, 티켓값은 오르는데 돈도 못 벌고, 기대작은 죄다 개봉이 밀리는 바람에 김이 샌 경향이 있다. 돈 없으면 헌혈이라도 해서 영화 보고 VIP 회원 된 게 인생 최대 업적인 사람인데, 안 가다 버릇하니까 딱히 아쉽지도 않더라. 하지만 쉴 때도 작업실에서 모니터나 바라보는 내가 너무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고, 자존감 회복을 위해 외출을 감행했다.
마침 가볍게 볼 수 있는 액션 영화가 개봉한다길래 당일에 보고 왔다. 백수의 특권인 평일 조조로 조졌다. 조조 영화가 구천 원이라니… 격세지감.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가 예전에 개봉한 수어사이드 스쿼드 (안 봤음)와 어떤 관계인진 잘 모르겠다. 일단 제목 앞에 정관사가 붙으니까 있어 보인다. 솔직히 내가 기대한 영화는 아니었다. DC 영화는 매번 내 취향에서 살짝 벗어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블랙 위도우 볼걸.
아무튼 오랜만에 집, 작업실 루틴에서 벗어나니까 사람들 사는 모습도 구경하고 재밌었다. 점심은 서브웨이에서 먹었다. 사실 샌드위치보다 쿠키 먹으러 가는 곳이다. 화이트 마카다미아 맛있었다. 다음번엔 하나 더 시켜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