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스타트렉 의 거의 모든 에피소드가 넷플릭스에 올라와서 처음부터 보고 있다. 스타워즈 와 양대산맥으로 북미에선 깊은 팬층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우주 모험 활극이지만, 국내에선 둘 다 인지도와 흥행 성적이 처참한 편. 2021년을 살고 있는 한국인이 입문하기엔 시대, 문화, 언어적 진입 장벽이 꽤 두텁다. 넷플릭스에서 지원하는 자막의 질도 영 시원찮고… 지금 보고 있는 오리지널 시리즈(TOS) 는 원조 맛집다운 재미는 보장하지만, 워낙 옛날 방송이다 보니 촬영, 특수효과, 편집, 전개 방식 등 모든 면에서 낡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음향에 공간이 많아서 누워서 보면 슬슬 졸려온다. (그래서 일부러 자기 전에 보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놀랐던 건 마틴 루서 킹이 살아 있을 때 방영되던 시리즈에 흑인 여성과 동양인 남성이 레귤러로 출연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둘 다 함선의 간부급으로 나온다. 이 캐릭터들은 새로운 타임라인으로 리부트한 더 비기닝 에도 등장하여 3부작 내내 개근하는데, 아마 영화 제작진이 시리즈 고유의 진보적인 정신을 계승하고 싶었나보다.
리부트 3부작의 1, 2편은 드라마 로스트 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J.J. 에이브럼스, 일명 쌍제이가 연출했는데 (3편인 더 비욘드 에는 제작으로 참여) 개봉 당시에도 전반적으로 준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코어 팬들의 평은 엇갈렸다지만, 그 양반들 비위는 원작자가 살아돌아와도 못 맞출 것. 일단 입문자인 내가 봤을 때 재밌었고, 원작에 대한 오마주와 최신 SF 영화로서의 균형을 잘 맞춘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삼총사인 커크 선장, 미스터 스팍, 본즈의 케미도 마음에 들었다. 악당의 사연 부분이 사족처럼 느껴지는 건 마이너스 요소인데, 3편의 이드리스 엘바(배우 이름만 기억 남.)가 특히 그랬다. 2편의 칸 역에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둔 건 그야말로 신의 한 수. 그가 끊임 없이 엔터프라이즈 호를 몰아붙이는 중후반부는 3부작 전체의 백미다. 개인적인 선호도는 2>1>3.
지난 목요일엔 고등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와 막 개봉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을 보았다. 기대한 것보다 훨씬 재밌었다. 예고편만 봤을 땐 캡틴 마블 정도만 돼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대성공. MCU에서 나온 최고의 1편은 아직도 아이언맨 이 1등, 스파이더맨 홈커밍 이 2등이지만, 샹치를 3등 정도에 올려놓고 싶다. 여전히 동아시아 문화를 폐쇄적이고, 신비롭게 묘사하는 몇몇 장면에선 고개를 갸웃하게 되지만, 와이셔츠에 간장 얼룩 좀 묻혀놓고 동양풍을 표방하는 할리우드 영화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에 반해 샹치는 선녀가 따로 없다. 앞에서 언급한 단점도 차오르는 무협 뽕으로 빠르게 상쇄되었다.
이야기의 중심 줄기인 주인공 샹치와 아버지 웬우의 갈등이 틀에 박힌 느낌은 있지만, 오래된 비극은 여전히 유효하다. 샹치의 절친인 케이티는 이야기의 바깥에서 진중해진 분위기를 환기해주는 감초 역할을 하는데, 툭툭 던지는 농담도 꽤 높은 타율을 보여준다. 해당 배역을 분한 아콰피나의 살짝 긁는 듯한 목소리도 매력적이고.
같이 본 친구는 그저 그랬던 것 같은데, 나는 나중에 넷플릭스나 국내 서비스를 앞둔 디즈니 플러스에 올라오면 다시 볼 의향도 있다. 기존 다른 히어로들과의 조합도 매우 궁금하다. 케이티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와도 잘 어울릴 듯. 새 어벤져스는 서른 즈음에 볼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