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앨범 송정맨션 이 지난 3일에 나왔다. 그때만 해도 날이 아직 따뜻했는데 지금은 거의 초겨울 날씨다. 개인적으로 여름에 어울리는 앨범이라고 생각해서 갑작스러운 추위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근데 뭐 날씨가 그런 걸 어떻게 하겠는가. 그레타 툰베리를 내심 비웃던 자신을 반성하자.
지난 며칠은 김라마라는 음악가에게 있어 굉장히 신선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듣고, 서로의 감상을 공유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몇몇 분들은 친절하게 직접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시기도 했는데, 나 좋아서 하는 일에 무슨 보상을 바라는가 싶지만, 분수에 맞지 않는 칭찬까지 들으니 정말 상이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특히 코로나 격리 중에 앨범을 듣고 위로를 받으셨다는 분과 중학생 때 레코드페어에서 받은 괴작 1.8 을 아직도 간직하고 계셨다는 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 부모님은 늘 내가 음악 하는 걸 반대했지만, 기왕 할 거라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곡을 쓰라고 했는데, 작은 목표를 하나 달성한 기분이었다.
- 나도 지금까지 아끼는 앨범 대부분을 중, 고등학생 때 들었다. 누군가의 어릴 적 플레이리스트에 남는 건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매우 기쁜 일이다.
(아직 제작 논의 중이지만) 송정맨션 피지컬 앨범이 나온다면 두 분께 따로 보내드리고 싶다. 당사자가 필요 없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발매 당일로 돌아가자면,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싶었다. 일은 데자부랑 포크라노스에서 다 하는데 왜 내가 떨리는지… 은근 소심하다는 건 자각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새가슴일 줄은 몰랐다. 자기 자신에게 실망했다. 1분 단위로 인스타그램을 확인하며 앨범과 관련된 스토리를 확인했다. 감사하게도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는데, 갑자기 “타이틀곡 빼고 다 별로.”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심지어 비슷한 게 많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호불호가 갈릴 줄은 알았지만, 불호가 이 정도로 많다니;; 같이 작업한 쿤디 씨한테 죄송한 마음까지 들면서 머리가 어질해졌다. 아니 그런데 플레이 타임 35분짜리 앨범을 나온 지 20분도 안 돼서 혹평한다고? 사람들 진짜 못됐다는 생각과 함께 착잡해졌다. 하지만 이 역시 앨범에 대한 반응이니까 스토리 공유 버튼을 눌렀다. 그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쿨함이었다.
엄마한테 핸드폰을 숨겨달라 부탁하고 밖에 나와, 집 근처에 있는 공원을 걸어 다녔다. 여전히 앨범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눈앞이 출렁였다. 육지에서 뱃멀미를 할 수 있나. 백신 부작용인가. 그렇게 몇 바퀴를 돌았을까,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오고 초연해졌다. 그래, 이게 내 마지막 앨범이 되더라도 하고 싶은 건 다 해봤으니 만족하자. 쿤디 씨가 말없이 언팔해도 디스 곡은 내지 말자. 랩으론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다. 근데 타이틀곡이 뭐길래 사람들이 그 곡만 빼고 다 별로라는 거지? 아.
저번 미팅 때 전곡 타이틀로 하기로 해놓곤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반나절 동안 나를 괴롭혔던 “타이틀곡 빼고 다 별로.”라는 말은 재치 있는 덕담이었던 것. 마스크 뒤로 안도와 허탈감이 섞인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렇게 한 번 긴장이 풀리니까 오히려 컨디션이 더 나빠져서 그날 저녁엔 아무 것도 못 먹고 잠이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웃기다.
보름도 넘게 지난 지금은 꽤 무뎌져서 진짜 부정적인 평을 봐도 그러려니 한다. 오히려 내가 그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을 뺏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나도 항상 더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다. 하지만 이번엔 이게 최선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송정맨션에 애정을 잃은 것은 아니다. 단지 오랜 기간 동안 몇천 번을 마주한 우리 관계가 첫 만남 같은 설렘을 잃고, 권태기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조용히 커버만 바라보고 있으면 자랑스러운데, 입만 열면 했던 얘길 반복하는 당신이 밉고, 당신을 미워하게 만든 내가 밉다. 뭔 소리야.
이미 몇 번인가 얘기했지만, 곡의 가사나 줄거리 해석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음악가와 팬의 소통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지만 결국 그 관계는 수직적이다. 청취자보다 딴따라 나부랭이의 지위가 높다는 얘기는 당연히 아니고ㅋㅋㅋ. 나는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가 커서 이미 자기 손을 떠난 작품의 감상까지 편집하려 드는 창작자에게 좆같은 염증을 느낀다. 그런 사람들이 싫다. 물론 궁금해하시는 분들의 마음도 이해하고, 관심을 주시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하지만, 난해하다고 느꼈다면 그것마저 하나의 감상으로 보존하는 방법이 있다.
언젠가는 나도 이 앨범을 청취자의 마음으로 마주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낯설고 불편하더라도, 다시 만날 때는 처음과 같은 설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