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미디어 그룹 디즈니의 OTT, 디즈니 플러스가 드디어 국내 서비스를 시작했다. 출시 당일부터 한국어 자막 품질이나 콘텐츠 부족 문제가 불거졌지만, 워낙 오래 기다려온 만큼 망설임 없이 연간권을 결제했다. 국내에선 아무래도 팬층이 두터운 마블 스튜디오나, 픽사 쪽 작품을 기대하고 많이들 가입할 텐데, 나는 사실 만달로리안 하나만 보고 가입한 경우다.
스타워즈의 첫 번째 실사 드라마인 만달로리안은 한 현상금 사냥꾼의 모험을 그려낸 외전 격 작품이다. 은하계의 운명이 걸린 대규모 전투 장면은 없지만, 각자 신념을 가진 이들의 진흙탕 싸움, 고군분투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이야기는 서부극과 닮아 있어, 스타워즈 특유의 ‘먼지 맛’을 제대로 계승한다. 주인공이 새로운 마을(행성)에 갈 때마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위기의 순간마다 조력자(또는 적)로 재등장하는데, 뻔하지만, 알면서도 기꺼이 속아주고 싶은 낭만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는 반란군 출신 용병, 카라 듄. 주로 중화기를 다루며, 가까이 다가온 상대는 격투기로 제압한다. 어쩐지 액션이 간결하고 호쾌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배우가 MMA 선출이었다. 팬들한테도 인기가 많았고, 실제로 디즈니 측에서 이 캐릭터를 주연으로 한 새 시리즈를 구상했지만… 배우가 직접 SNS에 올린 망언이 화제가 되면서 해고되어 시즌 3부터는 볼 수 없다고 한다. 퍼거슨 경 1승 적립.
작품 외적인 문제로 핵심 조연이 빠진 게 아쉽고, 걱정도 되지만, 일단 시즌 2까지 정말 재밌었기 때문에 다음 시즌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베데스다 스튜디오의 스타필드 말고도 2022년까지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또 생겼다.
어제와 오늘은 만달로리안의 감동을 이어가고자 스카이워커 사가 에피소드 8, 9를 봤는데…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에피소드 7은 개봉 당시 극장에서 그럭저럭 재밌게 봤다. 에피소드 8: 라스트 제다이 는 군 복무 중에 개봉해서 바로 보지 못 하고, 인터넷으로 관람 후기를 확인했었는데, 당시 평론가와 스타워즈 팬덤의 평가가 극명하게 나뉘었던 거로 기억한다. 전자는 호평이었던 반면, 후자는 스타워즈라는 시리즈에 대한 모독 그 자체라는, 지극히 (나쁜 쪽으로) 격앙된 반응이었다. 군 전역 후, 에피소드 9: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까지 개봉했지만, 거의 증오 표출에 가까운 후기가 쏟아지니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국내 개봉 이후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볼 용기가 생긴 거다.
솔직히 그 정도로 나쁘진 않았다. 시리즈 팬들이 왜 그렇게까지 분노했는지도 이해는 간다. 포스를 무슨 전능한 힘으로 묘사하여 차기작에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밸런스를 망가트리고, 새 주인공을 올려치기 위해 사람들이 수십 년간 사랑해온 기존 캐릭터들을 깎아내리는 서사는 보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정말 제작진들을 두들겨 패고 싶을 정도로 못 만든 영화냐면, 적어도 에피소드 8의 만듦새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리즈에 할리우드 최고의 인재들이 투입된 건데 당연하다. 볼거리, 들을거리 풍부한 블록버스터였다. 다만, 단골 순대국집에 갔더니 메뉴에 돈가스밖에 없는 것 같은 당혹감은 지울 수 없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가게를 리뉴얼해서 젊은 층에 어필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이 정도면 아예 간판 떼고 새 가게를 차렸어야지.
전편의 뒤치다꺼리나 하다가 끝난 에피소드 9는 별로 언급할 것도 없다. 반쯤 졸면서 봤다. 후속편도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믿을 건 만달로리안 뿐인가.